안녕하세요! 시간여행자에요~


이전 글에는 포르투갈과 마카오의 관계를 설명했었죠?


이번 글 역시 포르투갈과 관련있는 글이에요. 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성당에 대한 자세한 설명들과 함께 더욱 재미있는 글을 써보려고해요~



이번글에서는 포르투갈을 가시면 꼭 방문하시게되는 세계문화유산인 '성 바울 성당', 한국인이면 한 번쯤 방문해봐도 좋은 '성 안토니오 성당'에 대해서 설명해보도록 할께요!



<1. 성 바울 성당>


마카오를 방문하면 카지노보다도 먼저 찾는 곳이 있어요. 바로 성 바울 성당이에요! 유럽역사를 알고 계시다면 유럽에서는 로마 카톨릭의 세력이 굉장했던걸 아실거에요. 그래서 포르투갈인들이 마카오로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종교인 카톨릭을 마카오에 정착시키게 됐죠.


성 바울 성당은 1580년 선교사를 양성해 아시아 주변 국가에 파견할 목적으로 건립되었어요. 당시 마카오가 해상 무역으로 번성하여 성당을 크게 지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1595년, 1601년, 1834년 화재로 훼손된적이 있었답니다. 앞선 두 번의 화재를 겪었을 때에는 모두 목재로 지은 건축물이었는데, 두 번의 화재를 겪었을 때 앞부분을 목재가 아닌 화강암으로 짓게 되었다고 해요. 그런데 세 번째 화재가 나서 뒷 부분의 목재는 전부 타버렸다고 합니다. 이후 화재가 나서 없어진 뒷 부분은 복원하지 않았는데요. 들리는바에 의하면 이것이 신의 뜻이라고 하여 더 이상 복원하지 않는다는 설도 있었어요.


아래의 사진이 성당의 뒷 부분이에요. 뒷 부분이 화재로 모두 타버려서 그냥 성당의 앞부분인 정문만 외로이 남겨져 있네요. 여기에는 종교 예술 박물관이 있고 따로 안으로 들어가면 성당터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으니 꼭 구경해보시길 바래요!




아래 사진은 성 바울 성당의 정문이에요. 그런데 성바울 성당의 정문에 있는 조형물들은 각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해요. 각각의 의미를 알기전에 카톨릭교의 기본적인 지식을 알려드릴께요.


카톨릭 신학에서는 삼위일체라는 중요한 교리가 있어요하느님은 본질에서 한분이시며 인격(페르소나)에서는 3(성부성자성령)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이에요.

①성부구원을 계획하시는 분.

②성자구원에 필요한 일을 완수하시는 분 (성자의 육체적 현현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③성령성자가 완수한 구원의 은총을 구원 받을 사람에게 적용하시는 분. (특히 가톨릭교회에서는 이 성령을 매우 중시)




성 바울 성당의 조형물이 지니는 의미

1)첫 번째 단

- 비둘기: 성령의 힘

- 비둘기 주변에 있는 해, 달, 별: 천지창조

2)두 번째 단

- 비둘기 아래에 있는 예수상 왼쪽의 채찍, 가시관: 고난

- 비둘기 아래에 있는 예수상 오른쪽의 계단: 천국으로 가는 계단

3)세 번째 단(예수회의 종교관)

- 성모마리아 상 좌우측(주변)으로 6명의 천사

- 성모마리아 상 맨 왼쪽에서 오른쪽방향으로 펼쳐진 그림의 의미: 사탄으로 인해 인간은 망망대해를 떠돌아 다니는 존재이나 구원의 샘물로 생명의 나무를 얻는다. 만약 구원을 받지 못하면 용에 의해 해골(지옥)이 된다.



양쪽에 튀어나온 중국풍 사자는 유럽 성당에서는 볼 수 없는 장식이에요해골 왼쪽에 사후를 생각해 죄를 짓지 말라 의미의 중국어가 적혀 있어요.






(참고로 성 바울 성당에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있어요. 인생샷을 찍으시려면 새벽에 가야..ㅜㅜ)


성 바울 성당을 뒤로하면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을 그대로 옮긴 듯한 '세나도 광장'이 보여요. 아래 사진의 동상은 평화의 의미를 상징하는데요. 그 이유는 포르투갈이 마카오를 식민지배 한 이후부터 중국에 반환할 때까지 피를 흘린적이 없어라고해요. 남자동상은 포르투갈인 여자는 중국인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2.성 안토니오 성당>


어쩌면 성 안토니오 성당은 한국인들에게 성 바울 성당보다 더 특별한 곳일 수 있어요. 왜냐하면 이곳은 한국인 최초로 카톨릭 사제였던 김대건 신부의 흔적이 있기 때문이에요.


 


또 다른 성당인 성 안토니오 성당은 마카오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면서 한국인 최초로 카톨릭 사제였던 김대건 신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인연으로 매주 토요일 오후 4시에는 한국어 미사가 열리기도 한다


1821 충청남도 당진 출생 -> 가족이 대대로 카톨릭집안 -> 당시 조선에서 지속적인 박해를 받음 -> 1836년 몇몇 평신도들과 조선을 떠나 1837년 마카오에 도착 -> 마카오는 포르투갈 식민지역이었기 때문에 조선(or 명나라)의 위협에서 안전 -> 1839년 기해박해로 아버지가 순교


(김대건 신부의 흔적은 마카오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의 근거지인 상해에서도 찾을 수 있었어요. 이 부분은 '상하이'편에서 다루도록 할께요~)


바로 이곳이 성 안드레아 성당이에요!






성당 내부 오른쪽편에는 김대건 신부님 동상이 있어요~ 성 안드레아 성당은 김대건 신부의 동상뿐아니라 토요일 오후4시에 한국어 미사를 진행하기도 한답니다!




이곳에서 소액을 지불하면 아래와 같이 글을 쓰고 전시할 수 있게 해주어서, 소원을 적어봤어요~




마카오에는 굉장히 화려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사실 마카오는 본래 굉장히 조용한 곳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시간이었어요. 


아마 카지노와 같은 화장을 진하게 칠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화장에 가려진 얼굴이 더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글 래퍼런스]

http://www.ttearth.com/world/asia/china/macau/ruins_of_st_pauls.htm#.XhNKakczY2w

https://namu.moe/w/%EA%B9%80%EB%8C%80%EA%B1%B4%20%EC%95%88%EB%93%9C%EB%A0%88%EC%95%84


안녕하세요! 시간여행자에요~


이번에는 마카오의 기원이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다루어보도록 할께요!


과학기술의 발전은 유럽의 대항로개척의 시대를 열었어요.


<사진1>



1553년 포르투갈인들이 마카오에 하게 되었는데, 이때 당시에는 명나라 관할에 있었던 곳이었어요. 이전 대만여행글에서 대만이 원주민에 나라였다고 했던거 기억하시나요? 당시 대만이라는 지역은 명나라나 청나라에게 그렇게 중요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관리가 허술했던 모양이에요.


포르투갈인들은 1557년에 명나라 관리자들에게 뇌물을 주고 마카오 거주권을 획득하게 되었고, 광둥의 중국 관리로부터 도시건설허가를 얻었다고해요. 


포르투갈이 그곳에 터를 잡고 살려고 했다면 그곳의 지명을 알아야겠죠? 물론 당시 그 지역의 중국명칭이 있었겠지만, 포르투갈 사람들은 지나가는 현지인들에게 이곳이 어디냐고 물어본 후 그들이 아마가오(A-ma-gao))사원을 가리켰다고해요ㅎㅎ



그래서 '아마가오'->'마카오(마가오)'라는 명칭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사원은 마카오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고뱃사람을 지켜 주는 수호신 아마(틴하오)를 모신고 있어요



향을 피우기 위해서는 구매(제일큰거 20$)를 해야 하는데 항상 3개씩 묶음으로 판매한다고 합니다. (향을 피우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고해요;)




당시 제가 방문했을 때 어느 방송매체에서 왔었나봐요. 역시 그 지역의 공식적인 방문을 하는 경우에는 그 지역의 역사가 메인포인트가 되는구나라는걸 느끼는 순간이었어요~



아마사원을 마주하고 왼쪽편을 보게되면 독특하게생긴 건물을 볼 수 있어요. "Capitani dos portos"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 문구는 항무부라는 뜻도 있지만 포르투갈의 식민지 행정구를 의미한다고해요. 당시 포르투갈인들이 아마사원을 특별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바로 옆에 정부기관 건물을 세웠던것 같아요. 


   


마카오는 1841년 영국이 홍콩에 식민지를 개설하기까지 중국과 서양의 유일한 교류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마카오를 거쳐 중국으로 전해진 문물은 그리스도교 외에 서양에서 발달한 천문학유클리드 기하학근대적인 지도투영법대포주조기술 등이 있었다고 하네요.


영국이 본격적으로 동아시아에 세력을 펼치는 시기에 포르투갈 또한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1887년 청나라와 조약을 맺어 마카오 식민지 건설을 합법화했다고 합니다. 1951년 포르투갈의 헌법개정에 따라 마카오를 식민지 구역이 아닌 자신들의 정식 영토로 인정해 버립니다.


하지만, 1966년 중국의 문화대혁명 사건으로 인해 마카오의 포르투갈 관료들과 현지 중국인 간에 분쟁이 일어난 사건을 시작으로 지속적은 마찰을 맺은 끝에, 1973년 마카오를 '자치령'의 개념으로 관리했다고 합니다.


결국에는 1979년 중국과의 수교를 통해 1986년 베이징에서 마카오 반환협정을 체결하고, 1999.12.20 중국은 마카오에 대한 주권을 회복하게 됩니다.




이번 마카오 여행을 하면서 느낀것이 마카오라는 지역은 사실 19세기 포르투갈의 모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듯한 느낌이었어요. 에그타르트가 유명한것만 봐서도 포르투갈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있는 것 같더라구요 ㅎㅎ (에그타르는 18세기 포르투갈 수녀원에서 탄생한 음식이라고하네요!ㅎㅎ)


그리고 돌아다니시면 종종 포르투갈어도 많이 보실 수 있으실거에요 ㅎㅎ


아마사원은 많은 관광객들이 들리는 곳은 아니지만 마카오라는 곳의 기원이 되는 곳을 방문하고 싶다면 꼭 강추할께요!!! ㅎㅎㅎ


그럼 다음글에서 뵐께요~!



[글 래퍼런스]


안녕하세요~ 시간여행자입니다!


마카오는 홍콩에서 페리를 타면 1시간이내에 도착하기 때문에 보통 홍콩을 가시는 분들은 마카오까지 들리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마카오에는 '하우스 오브 댄싱'이나 수 많은 '카지노'들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죠! 물론 육포와 에그타르트 맛도 예술인 곳이에요ㅎㅎ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마카오는 성당이 굉장히 많아요. 이상하죠? 분명히 중국관하에 있는데 어떻게 성당이 많을 수 가 있었던건지;


그 외에도 마카오 또한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에요. 특히 한국인 크리스천분들이라면 꼭 한 번 방문하길 바래요ㅎㅎ


그럼 재미있는 역사를 갖고 있는 마카오로 시간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Q1. 마카오에는 왜 이렇게 포르투갈의 흔적들이 많을까?

-마카오 지명 어원

-에그타르트

Q2. 마카오에는 왜 이렇게 성당이 많은걸까?

- 마카오에 있는 성당 중에서 매주 토요일 오후4시에 한국어 미사를 여는 곳이 있다?

- 교황자오선이 마카오에?



자 그럼 이번에도 위와 같은 순서대로 과거여행 떠나보도록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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