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간여행자에요~


영국이 홍콩을 지배하게 된 이유는 아편전쟁 때문이에요. 그런데, 이 아편전쟁은 왜 일어난 것 일까요?

그 이유를 알기위해서는 화폐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번 장에서는 화폐의 역사를 통해 아편전쟁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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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래 글들은 대부분 "TVN 어쩌다 어른; 조승연 작가편; 화폐의기원"이라는 곳에서 시청하면 훨씬 이해도 잘되고 생동감 있게 내용을 들으실 수 있으실거에요. 그래서 꼭 한 번 시청하시는 걸 추천드려요!


작가님께서 오마이스쿨과 함께 따로 유튜브에 무료영상을 올린 것 도 있으니 시청하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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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역사]


<1. 최초의 화폐; 인간>


대도시가 생기기 전에는 서로 물물교환이 주가 되었어요. 한쪽에서 돼지가 필요해서 돼지를 빌리면, 돼지를 빌려준 쪽에서 나중에 쌀이 필요하면 쌀을 빌리는 식이었죠. 하지만,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시작되고 대도시가 생기면서 익명성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이는 공동체의 개념이 약화시켰어요. 때문에 옆에 사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경우도 생기고, 어느덧 이사를 해 사라져 버리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었죠.


그래서, 이때부터 점토에 빌려주고 빌린 것들에 대해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점토에 기록하고 들고 다니기가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나중에는 토큰같은 것을 실로 엮어 팔찌로 만들어 들고 다니면서 자신의 물건을 빌려간 사람에게 보여주게 되었어요


하지만, 이 당시에도 빚을 갚는 형태는 물물교환이었다. 그래서 A B C에게 양10마리를 빌려줬는데, C A에게는 쌀 5포대, B에게는 쌀 7포대 주는일이 생겨 갈등이 벌어지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이러한 불공정 거래를 없애기 위해 도량형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메소포타미아는 소한 마리를 빌리면 소 한 마리를 빌렸다고 하지말고 은 50g을 빌렸다고 기록하라고 명명하면서 가치에 대한 평가를 무게로 통일하게 된 것 이죠


그런데 당시 은 워낙 귀했기 때문에 화폐로 기능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도량형이 발표된 후 빌려준 물건을 갚지 못했을 때에는 갚지 못한 집안의 딸을 납치하거나 가장을 죽였다. , 은이 담보가 아닌 인간이 담보인 사회였던 셈이죠 (인간화폐의 시대 도래).






<2. 최초의 이자개념; 노예제도>


인간화폐가 나중에 노예제도로 발전하게 되는데, 그것에 크게 기여한 것이 지구라트라는 곳이에요지구라트라는 곳은 흉년에 대비하기 위해 비상식량을 저축하는 곳이자 신전역할을 하기도 했는데요. 당시 메소포타미아인들은 강 주변에서 살면서 농경사회를 이루었는데, 당시 홍수와 가뭄을 피하기 위해 지구라트에 곡식을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고해요


가뭄이나 홍수가 들어 주민들이 곡식을 재배하지 못할 때면 종자 씨를 구하기 위해 지구라트에가서 빌리고는 했는데, 지구라트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종자 씨 하나를 주면 다섯 알갱이가 나오니, 나중에 갚을 때 두 알갱이로 갚어라라는 이자 개념을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통 흉년과 풍년이 번갈아 일어나지 않고 흉년이 연달아 일어나는데, 이런 경우에는 주민들이 이자만 늘어나는 사태가 발행하고 빚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노예가 되기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이것을 통해 노예 사회 (1% 지배계층, 99% 노예) 가 시작되기 시작하게 됩니다. 당시에도 여성은 여전히 아버지의 소유재산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빚이 많아져서 파산을 하게 되면 그 집안 여성들을 데려와 윤락업소에 판매를 하게 됩니다





<3. 군사화폐 그리고 세금의 시작; 은> 


노예 화폐시대에는 굉장히 긴 주기를 가지고 노예들이 한 번씩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노예가 화폐인 사회는 크게 한 번씩 기반이 흔들리곤 했어요. 그래서 왕들은 시민계급을 대규모 군대조직으로 만들어 반란을 일으키는 노예들을 죽였습니다


이러한 반란을 막는 또 하나의 방법은 노예를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었어요. 알렉산더 대왕은 이때부터 은을 화폐로 만들어 시민계급에게 뿌림으로써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해주면서 군대조직을 더 강화시켰어요. 당시 '은'이 귀했기 때문에 이때부터 다른 나라의 신전을 공격하는 정복전쟁(이집트, 페르시아 등)을 일으킵니다 (보통 신전에 많이 '은'이 있었다고해요). 알렉산더 대왕은 이 때부터 정복전쟁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티레, 이집트, 페르시아 등). 


약탈한 금은 보화는 녹여 동전으로 발행하기 되는데 이것이 최초의 금속 화폐에요. 당시 군사들은 소금(salt) or 은화를 봉금(salary)로 받았다 (소금은 생필품이었음으로 시장가치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은화가 온전히 화폐로 통용되지는 않았다고해요. 예를 들어, 고대 잉카부족에서는 딱딱한 은이 어떤 가치를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은화를 통해 거래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은화를 건내주면 옷, 식량 등을 사입거나 사먹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지배계층들은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세금이라는 것을 은화로 징수하기 시작해서 모든 마을 부족 사람들이 은화를 사용하겠금 만들었어요. 그래서 모든 마을과 부족들이 군사들에게 생필품이나 무기 등을 팔 수있게 함으로써 모든 마을과 부족들을 보급처로 만들었죠. 이 후로, ‘이 화폐로써 자리잡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노예의 반란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해결할 순 없었어요. 왜냐하면 빚이 생기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자가 때문이에요. 또한, 농민들이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군대에 들어갔지만 긴 시간의 군대생활과 지속적인 이자로 빚이 늘어나는 이중고 생활을 겪게됩니다. 그래서 결국 군사화폐의 시대는 종결이 되었죠.





<4.어음화폐의 출현; 예수, 무하마드>


군사화폐의 문제는 이자로 인한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이자를 받으면 안된다고 주장한 사람이 성자로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그 사람이 기독교의 창시자인 예수그리고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함마드’에요


예수는 고리대금 없자들을 내쫓으면서 이러한 스토리가 유럽전역에 퍼지게 됩니다. 그래서 당시 많은 대중들이 예수와 무함마드의 말을 따르고 그들의 행적을 기리기 위한 운동들을 했죠. 이자를 받는 장소인 신전(앞서 언급한 지구르타)을 파괴하고 예수와 무함마드가 한 말들의 일부분을 법제화 (ex: 성경-이자를 없애라) 하도록 주장하고, 종교화하기 시작했어요


은행역할을 하던 신전이 폐쇠되자 유럽은 금융업자들이 돈을 숨기게 되고 통화시스템이 무너지게되어 자급자족 사회인 봉건사회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슬람은 어음이라는 제도를 통해 화폐제도를 유지하게 되는데요. 당시 어음은 지금 돈을 빌리고 나중에 돈을 갚겠다라는 약속증이었어요


어음을 돌려받을 때 수수료를 천원추가 하게 되는데 (사실 이것이 이자나 다름없지만), 당시 굉장히 괜찮은 아이디어였다고 합니다. 예를들어, A(이슬람) 상인이 B(유럽) 상인에게 어음을 돌려받으려고 할 때, B상인이 C(중국)상인에게 어음증을 내주었으니 C상인에게 어음증을 받고 자신(B(유럽)상인)에게는 그냥 물건을 주면 된다고 하는 식으로 진행되어 결국 이슬라 어음 시스템이 국제적인 화폐 시스템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상인들은 유럽과 중국의 중심점인 말레시아 말라카에 거대한 어음거래소 (유네스코) 를 설치하게 되고, 나중에 말레이시아가 강성해지자 어음거래소를 남쪽으로 조금 내려 쿠알라룸푸(중동 산업과 금융 중심가 됨) 에다 이전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이슬람은 신용거래를 한셈인데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모든 이슬람사람들이 메카에 가서 상인들의 신용에 대해 이야기 하기 때문에 신용을 지킬 수 밖에 없었다고해요. 이렇게 이자도 받지 않고 신용으로 거래하는 상인들이 존경받는 시대가 도래했고 알라바바나 신밧드라는 이름으로 남겨져 있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어음화폐는 개인이 화폐를 발행한 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대규모 군대 조직이 생기기 어렵고 국방력이 약화 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단점으로 인해 서서히 아랍제국이 몰락하게 되고 어음화폐가 사라지게 됩니다.




<5. 유태인과 제국주의>


아랍에서는 어음화폐제도가 무너졌지만, 유럽인들이 어음화폐제도를 고리대금으로 악용하게 되요. 당시 유럽사회는 봉건제도로써 영주들과 계급제도가 있었는데 (귀족, 기사, 농민), 이슬람 국가들이 세력을 넓히자 유럽 최대 권력자인 교황이 기사들에게 당시 무역 교역 중심지인 예루살렘에 침략해서 얻는 땅도 개인소유로 할 수 있게 하고, 이전 죄를 사해주는 면죄부를 주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기사들이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가는 길목에서 숙박하고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이를 제공해주 집단이 템플 기사단이었어요. 각 지역에 성당에서 템플 기사단이 동네은행 역할을 한 셈이죠. 기사단들은 예루살렘이 쳐들어가 땅문서를 얻게 되면 그것을 템플기사단 유럽지구에 가서 식/숙박, 무기지급, 통행증 등으로 받게 되는데요.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당시 기사들은 싸워서 이기는 것이 중요했지, 땅은 그저 이겨서 받게 되는 부속물로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기사들이 죽게 되면 나중에 템플 기사단이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 없어지고, 또한 기독교 율법상 이자는 받을 수 없으니 대출상환금을 받을 수 없게 만들어 벌칙금을 부과하는 방식을 만들게 됩니다. 예를 들어, 기사단이 대출을 받아 숙박증이나 여러 들을 템플 기사단으로부터 받으면 2달안에 갚아야 하는 식이고,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벌칙금이 불어나는 식이죠, 화폐에 시간개념이 도입된 것 입니다


하지만, 기사단이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는 것만해도 3달이 걸리기 때문에 그 벌칙금은 불어나게 됐고 기사단이 빚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기사단은 나중에 자신들의 명예를 버리고 돈이 있어보이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예루살렘에 있는 유태인 이슬람인들을 모두 죽이고 돈이 되는 모든 것들을 약탈하는 사태까지 이르게 되었죠.


왕의 입장에서는 이런 템플 기사단의 행보가 탐탁치 않았지만, 템플 기사단의 세가 쎄기 때문에 직접적인 제압은 힘들었어요. 그래서 프랑스 황제 필립 4세는 1307 10 13일 유럽전역에 비밀 결사대를 조직하여 기사단을 체포하고 악으로 몰아 모두 처형했답니다


하지만, 필립 4세는 이러한 고금리 정책을 폐지 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또 악용하게 되었는데요. 기독교 율법 (신명기)에서는 형제(같은 국가)에게는 이자를 받으면 안되지만, 다른 형제 (다른나라) 에게는 받아도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는 점을 이용하게됩니다


그래서 필립 4세는 프랑스에 있던 유태인들에게 정상적인 일을 못하게 일자리를 규제하고, 프랑스 국가에서 보증을 서줄 테니 고리대급업을 하라고 하명하게됩니다. 이 때부터 유대인과 프랑스 왕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됩니다. 필립 4세 왕이 유태인들에게 프랑스 기사 또는 국민들의 보증을 서주게 되고, 기사들은 이자를 갚기 위해 여러 땅을 정복해 나가는 식으로 왕은 자신의 권한을 넓힐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당시 유태인들이 유럽인들에게 돈을 대출해주기도 했었는데요. 기사들이 나가서 죽게 되면 역시 이자를 못 갚게 되는데 이때 유태인들이 프랑스 국왕에게 대출이자를 갚으라고 하게 됩니다. 프랑스 국왕은 민중들에게 유태인들 때문에 삶이 피폐해지고 있다는 소문을 일으키게 하고 민중들이 봉기를 일으키게 만들면서 이러한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됩니다.


기사들이 이자를 갚게 하기 위한 또 하나의 방책은 왕이 기사들에게 점령할 땅들을 소개시켜 주는 것인데, 이것이 포루투갈이 대항의 시대의 포문을 열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대항의 시대와 제국주의는 빚을 갚기 위한 기사들의 처절한 움직임이었던 것이죠.






<6. 제국주의의 팽창; 은>


나라의 빚을 청산하기 위해 제국시대의 유럽열강들은 돈이 되는 모든 것들, 필수품, 사치품을 약탈 및 수입하려고 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보화)입니다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를 설립해 증권거래소와 채권거래소를 만들어 금융시장에 자율적으로 맡기게 됩니다. 그래서 중산층들이 주식이나 채권을 사들이면 그 돈이 동인도회사에 중재에 따라 함대로 가게되고, 함대는 다른 나라를 쳐들어가 물건을 약탈해 현물시장으로 넘기게 됩니다


이 현물시장에서 다시 동인도회사로 현금을 넘겨주게 되고, 다시 금융시장에 넘겨 줌으로써 다시 중산층에게 이익을 주는 방식이었죠. 당시 약탈한 물건중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것이 후추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후추가 가장 큰 돈이되는 물건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네덜란드가 후추가 많이 생산되는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삼게 됩니다


그런데 역시 이 시스템에서 또한 이자율 문제를 안고 있었어요. 당시 이자율의 최대치는 40%였는데요. 이 말은 자신이 100% 수익을 내지 못하면 파산한다는 뜻인데,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러한 이자율을 감당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노예와 마약을 불법적으로 거래하면서 수익을 높이게 되는데, 그래서 아프리카들을 정복하고 사람들을 노예로 삼기시작합니다


그리고 영국은 마약을 국가수출품으로 만들어 수출하기 시작하게되고, 이것이 아편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죠.  






지금까지 화폐의 기원에 대해서 알아보았어요. 이러한 지식을 통해 아편전쟁이 일어난 배경에 대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다음글에서는 아편전쟁과 그 결과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할께요!





[래퍼런스]

 어쩌다 어른, 조승연 작가편, 화폐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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